백형렬 카이스트 수리과학부 교수가 윌리엄 서스턴(1946~2012)의 마지막 제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서스턴은 천재수학자로 위상수학 분야에서 큰 발자국을 남겼다. 천재의 제자는 스승 못지않게 훌륭한 학자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난 5월 9일 카이스트로 백형렬 교수를 찾아갔다. 백 교수는 ‘당신은 어떤 수학자인가’라는 질문에 “좀 오만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수학자라고 그냥 표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물론 좁혀서 얘기하면 저차원 위상수학자다. 하지만 위상수학을 하기 위해 공부하는, 쓰는 방법론이 다양하다. 확률적인 방법론도 쓰고, 조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이지운 교수는 학부에서는 물리학(서울대)을 공부하다가 대학원(미국 하버드대)에 진학해서 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 교수는 서울과학고등학교 3학년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대회에 나가 은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98학번으로 들어가 물리학과 수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는 수리물리학자다. 수리물리학은 많이 들어본 용어로, 수학과 물리학의 경계를 탐색하는 학문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5월 2일 카이스트에서 만난 이지운 교수는 “나는 기본적으로는 수학자다. 주 연구 분야는 수리물리학과 확률론이다”라고 했다.수
정세영 부산대 교수(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는 퇴임 2년을 남겨놓은 올해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1991년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가 되어 학자로 일한 지 31년 만에 최상위 과학학술지에 연구 결과를 처음 냈다. 그 연배이면 통상 연구에서 손을 뗀다. 그런데 정 교수는 정년을 목전에 두고 되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2020년에는 나노과학 분야의 최상위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러지’에도 논문을 냈고, 2021년에는 좋은 재료과학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양자컴퓨터 연구자인 줄 알고 찾아갔는데 약간 달랐다. 지난 4월에 만난 이동헌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컴퓨터도 하는데 양자센싱 연구자라고 나를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양자센싱(quantum sensing) 및 양자이미징(quantum imaging) 쪽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자센싱이 무엇일까? 이 교수는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양자효과를 실생활에 사용하려고 하는 걸 양자기술이라고 한다. 양자기술을 이용해 컴퓨팅을 하면 양자컴퓨팅이고, 그걸로 멀리 보내면 양자통신이고, 그걸로 정밀 측정을 하면 양자센싱이다”라고 설명
차재춘 포항공과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학교 다닐 때는 수학을 별로 잘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8일 포항공대 수리과학관 내 ‘위상수학연구센터’에서 만난 그는 “나는 수학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했다기보다는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위상수학연구센터’는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자 지원 사업. 리더연구자 지원 사업은 개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 중 최상위 지원 제도다.차 교수는 “반면 과학기술에는 꼬마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라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는데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고 프로그래밍을 좋아했
한양대 생명과학과 최제민 교수(면역학)는 “한양대 교수가 될 때까지는 밀려 밀려 살았다”라고 말했다. ‘밀려 밀려 살았는데 교수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지난 3월 25일 만난 최 교수는 연세대 생명공학과 96학번이다. 대학 입시 합격자 발표 명단에는 이름이 없었고 추가 합격으로 들어갔다. 재수까지 했는데, 추가 합격을 하니 속이 편치 않았다. 대학 4년간 똘똘하게 보이는 동기 사이에서 조용히 지냈다. ‘밀려 밀려 교수가 되었다’공부 잘하는 학과 동기 친구들은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편입을 하기도 했다. 대학원 갈 때도 해
서울대 자연과학대 22동 415호실 입구에 ‘박혜윤 교수 실험실’이라고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지난 2월 23일 박 교수를 따라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컴컴하다. 박 교수가 안에서 실험하고 있는 대학원생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등을 켰다. 안에 몇 개의 작은 방이 있다. 그중 한 방에 현미경이 있는데, 그 옆에는 ‘virtual reality(가상현실)’라는 글자가 쓰인 작은 칸막이가 놓여 있다. 박 교수는 “쥐를 놓고 가상현실 실험을 한다”라고 말했다.박사과정 학생인 이병훈씨가 야구공보다는 크고 축구공보다는 작은 흰색 공을 보여준다
부산대 양해식 교수(화학과)를 예정보다 30분 일찍 찾아갔다. 지난 9월 17일 부산대 화학관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더니 그는 연구실에서 내게 설명할 때 쓰려고 슬라이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의 슬라이드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부산 영도의 흰여울마을 앞바다를 떠올렸다. 양 교수를 만나러 서울에서 부산으로 간 김에 지인이 가보라고 한 바닷가 예술마을에 부리나케 들렀던 것이다. 아름다운 바다와 배들, 그리고 서점 한 곳, 고양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양 교수가 작업을 멈추고 슬라이드를 TV 모니터에 띄웠다. 그걸 한 장씩 넘기며
마감날 원로 과학자 한 분이랑 통화를 하는데 대뜸 “벌써 지겹다. 또 철이 돌아온 모양”이라고 푸념하더군요. 무슨 말인지 연유를 물어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노벨상 관련 인터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문답의 틀도 매년 거기서 거기랍니다. 올해 한국인 중 혹시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학자들이 있는지, 연구 업적 등을 물어보다가 ‘노벨상 불임국 한국’의 문제를 지적해달라는 것으로 끝난다고 합니다.이 말대로 10월이 오면 한국인들은 ‘노벨상 희망고문’에 시달리곤 합니다. 한국인 중 수상 후보로 이름이 조금이라도 거론
경북대 화학관 1층에는 다른 대학에서 보기 힘든 장비가 있다. 초고분해능 질량분석기(Ultra-high resolution mass spectrometry)로, 화학과 김성환 교수의 장비다. 지난 8월 24일 햇볕이 뜨거운 날, 김성환 교수를 따라서 들어간 실험실 입구에는 ‘질량분석 융복합연구센터’라고 쓰여 있었다. 실험실 안에는 두 대의 질량분석기가 있었는데 하나는 흰색이고 다른 건 검은색이다. 흰색 장비는 독일 업체 ‘브루커(BRUKER)’ 제품이다.김 교수는 “13억원 하는 장비다. 한국 교수 중에는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라
천문학자인 강혜성 부산대 교수(지구과학교육과)는 “부울경(부산·울산· 경남)에는 현역 천문학자가 둘밖에 없다.(천체물리학자 제외) 그래서 2021년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천문연맹(IAU) 총회 조직위원장을 내가 맡게 됐다”고 말했다. 국제천문연맹 총회는 3년마다 개최되는 세계 천문학계의 올림픽과 같은 행사다. 지난해 5월 울산과학기술원 류동수 교수를 취재하러 갔다가 국제천문연맹 총회가 얼마나 대단한 행사인지 들었고(주간조선 2560호 ‘과학 연구의 최전선’ 기사 참조), 해를 넘겨 강혜성 교수를 만났다. 부울경에 천문학자가 그렇게 소
박홍규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를 만나러 가던 지난 1월 17일, 그가 쓴 논문이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걸 알았다. 박 교수는 이날 아침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교신저자로 참여한 논문이 미국 최고의 과학학술지에 게재됐음을 알려왔다. 박 교수는 고려대 연구실로 찾아간 내게 “나노광학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절반은 그 연구를 하고 있다”며 나노광학과 이날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내용을 잠시 설명했다.그에 따르면 ‘나노물질에 빛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나, 빛이 특이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나노광학의 출발이다. 나노물질은
양자컴퓨터는 ‘꿈의 미래 기술’이라고 한다. 미국의 정보통신기업 구글이 지난해 10월 일반 컴퓨터를 뛰어넘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한 후 일반인들은 ‘그런 기술이 구체화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물리학자들도 자신의 연구가 양자컴퓨터 개발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적지 않게 한다. ‘과학 연구의 최전선’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연구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전혀 다른 두 가지 기류가 있다. 정부는 수천억원을 양자컴퓨터 개발에 쏟아부으려 하나, 일부 물리학자는 “시기상조”
카이스트 물리학과의 이성빈 교수(응집물질물리학 이론)는 에너지가 넘쳤다. 학과 내 유일한 여성 교수로, ‘과학 연구의 최전선’ 취재를 하면서 만난 네 번째 여성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양자스핀 아이스(Quantum Spin Ice)라는 물질을 연구하고 있다고만 듣고 지난 12월 12일 대전 카이스트로 찾아갔다. 이 교수는 “양자스핀 아이스 연구자 맞다. 하지만 양자자성(Quantum Magnetism) 연구자가 내 연구를 더 잘 표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Lab) 이름이 ‘양자자성 이론 랩’이라고 했다.
미국 페르미연구소 전 부소장, 현 시카고대학 물리학과 학과장, 차기 미국 물리학회 입자물리분과위원장…. 입자물리학자(실험) 김영기의 화려한 이력에 입이 쩍 벌어진다. 페르미연구소가 어떤 곳인가. 세계 최고의 고에너지 입자물리연구소다. 2008년 유럽에 더 강력한 입자충돌기(LHC)가 건설되기 전까지 세계 입자물리학 실험을 호령하던 곳이다. 현재 우주에서는 볼 수 없는 톱쿼크 등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를 수없이 발견했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3)를 읽은 독자라면 주인공 이휘소 박사가 페르미연구소에서 이론물리부장으로
고등과학원 이기명 교수(이론물리)는 ‘국가석학’이다. 국가석학 지원사업은 노벨상 수상자에 버금가는 역량을 갖춘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 교수는 2006년에 선정됐다. 지난 5월 20일 서울 홍릉의 고등과학원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방에 들어가니 작지 않은 공간을 가득 채운 책과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칠판에는 해독 불가한 수식이 가득 쓰여 있었다. 이 교수는 “칠판, 책, 지저분한 테이블, 이런 게 아이디어와 내 공간 사이의 긴장”이라고 말했다.이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서울대 교수로 일했고, 1999년부터 고등과학원 교수로
양운기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관련 자료를 찾다가 그가 “중학교 때 장래희망이 7급 공무원이었다”라고 말한 걸 보았다. 의아했다. ‘대통령’ ‘우주비행사’를 꿈꿀 나이인데? 지난 3월 13일 서울대에서 만난 양운기 교수는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실험가다. 10대 초반에 ‘7급 공무원’이라는 소박한 꿈을 가졌던 그가 어떻게 서울대 교수라는 한국 최고의 지식인이 되었을까? ‘과학 연구의 최전선’을 취재하러 갔지만, 우선 그 이야기가 궁금했다. 서울대 식당에서 양운기 교수 취재는 그렇게 시작했다.양운기 교수는 10대 중반만 해